Intro
나는 여러 권의 글쓰기 관련 책을 읽었다. 그 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영문 도서는 Joshua Schimel의 “Writing Science”를, 한글 도서는 이 책을 추천하겠다. 두 책 모두 단순, 명확하면서도 특정 종류가 아닌 일반적인 글쓰기에 통용될 수 있는 원칙을 다루고 있다.
글쓰기
질문은 문장-기계를 돌리는 연료다. 한 문장을 쓰고 적절한 질문을 한 후 답하면, 다음 문장이 나온다. 문장을 지배하려면 질문을 지배해야 한다. 질문이 멈추면 문장도 멈춘다. … 질문을 통해 문장을 이어나가는 방식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그 문장을 왜 썼고 왜 그 자리에 위치시켰는지 대답을 줄 수 있으면서도, 반대로 글 쓸 때 자연스레 이를 고민하게 해준다. (61-62 pp)
먼저 이 책에서는 몇몇 유용한 질문을 소개한다. 이 질문에 대답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면 자연스레 탄탄한 문단이 완성된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은 한창 호기심 많은 유치원 아이들이 잘 하는 “왜?”와 비슷하다. (최소) 두 번 질문하기. 이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글쓰기 과정을 사실(말과 행동) à 질문 à 견해로 구분한다. 가운데 단계에서 저자가 말하는 “왜?”가 등장한다. 이 “왜?”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다루는 사실에 대해서 “왜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그게 왜 중요한데?” 등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이 질문들은 각 문장을 탄탄하게 이어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해 대답하면서 자연스레 탄탄한 글이 완성된다. 가령 논문을 쓴다고 하면, 다루는 사실은 데이터가 될 것이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이게 왜 중요한데?” 등의 내용이 고찰에서 다뤄질 것이다.
좋은 글의 기준이 하나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말하는 바가 분명한 글을 좋은 글이다. 말하는 바가 분명한 글은 궁극적으로 답하고자 하는 하나의 화제에 대응하는 하나의 결론을 담는다. 그러나 글쓰기 초보는 자신이 쓴 모든 문장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문장이 가장 중요한 문장인지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189 p)
명확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여기에도 앞서 나온 질문들이 사용된다. 그리고 몇 개 개념이 추가된다. “주제어”란 사실에서 견해로 도약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초의 씨앗 개념이고, “화제”란 주제어로부터 만들어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견해를 밝히고 나름의 결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결론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자신만의 결론을 뒷받침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명확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루는 주제어가 무엇인지, 주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분명히 밝히고 그에 벗어나지 않게 전개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특별히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화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라면 과감히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화제부터 시작하여 화제에 대한 대답과 그 대답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반복하여 논리 구조를 갖춘다. 그렇게 하면 주제어 제시 à 화제 제시 à 결론 제시라는 직관적, 효과적인 구조를 갖춘 글을 쓸 수 있다. 초고는 편하게 쓰되 퇴고 중에 위의 질문을 통해 논리 구조와 각 문장의 필요성을 점검한다.
짧고 구체적으로 쓰되 필요한 정보는 모두 담아내야 한다(135 p). 이를 위해서는 해당 언어의 어휘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분량이 제한된 자기소개서, 제안서 등의 글을 쓸 때도 물론 중요하고 분량 제한이 없더라도 독자를 위해서, 글의 완성도를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이다. 단어뿐만 아니라 어떤 내용을 썼는지, 안 썼는지도 꼭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불가능한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하되, 어떤 경우에도 거짓 사건을 지어내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늘 자신이 쓸 수 있었지만 쓰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왜 그것을 쓰지 않았는지 스스로 이해할 만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165 p)
글읽기
읽기가 안 되는 이유는 읽기만 하기 때문이다. (200 p)
창의력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라 남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사물과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그것을 드러내는 능력이다. (207 p)
글을 읽는 방법도 다룬다. 마찬가지로, 앞서 다룬 글 쓰는 방법을 적용한다. 이 글을 쓸 때 어떤 질문을 했고 어떤 의도로 구성 했는지, 어떤 질문으로 문장을 이어 붙였는지 고민하며 읽어야 한다.
기타
공부란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들을 돌려 써가면서 대상으로부터 다양한 의미를 추론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세상이 무지갯빛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색안경은 무지갯빛 세상을 이해하기에 형편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어떤 색안경이든 썼다면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그 다음에 미련 없이 색안경을 벗을 수 있어야 한다. (p 228)
보통 논문 한 편에는 주로 사용하는 색안경이 적어도 하나 있다. 가령 같은 결과라도 이에 대한 우수함을 강조하려는 논문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논문에서의 해석은 서로 다를 것이다. 하나의 색안경이 전능하지는 않다. 그 색안경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이 양면을 꼼꼼하게 보여주거나 다른 색안경과 비교하는 것으로도 괜찮은 논문을 쓸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가진 색안경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어느 부분을 개량할지, 아니면 버릴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를 벽돌 쌓기에 비유했다(97 p). 단어 뜻을 정확히 알아야 튼튼한 벽돌을 만들 수 있다. 여러 개의 근거로 타당성을 높이는 것을 튼튼한 벽돌이 여러 장 있어야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고 표현했다. 적절한 질문으로 문장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것은 시멘트질에 해당한다.
좋은 글귀
자신의 경험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 속에서 좋은 질문을 발굴하여, 그에 관한 견해를 다른 사람이 알기 쉽게 쓰는 방법 (들어가며)
글쓰기는 문법 규칙에 따라 같음과 다름을 배치하여 궁극적으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p 55)
사건만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면 견해는 언제든 덧붙일 수 있다. …… 문장은 시공간을 압축한다. 이것이 마법의 핵심이다. …… 사실을 기록하는 글은 경험을 재구성하고 압축해야 한다. (133 p)
일상에서 대화 중 일부를 기록하는 것만으로 좋은 글감이 된다. 이렇게 기록한 남의 말들이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137p)
자신이 쓰는 문장이 왜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지를 따질 때, 우리는 글쓰기 과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다. (149p)
묘사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는 문장으로 그린 그림이다. (153p)
11장
원인, 이유, 근거를 구분했지만 헷갈린다. 원인은 객관적 사실이나 현상과, 이유는 주관적 견해와 이어진다. 여기까지는 명확하지만 “근거”가 추가되면서 어려워진다. 근거는 문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라고 했고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원인은 근거라고 할 수 있지만 이유 중에서는 근거인 것도 아닌 것도 있다. 즉 견해와 견해로 사이의 질문 “왜?”의 답변에서 근거에 분류되는 것이 나올 수 있다. 이를 반영하면 103p의 그림은 다른 버전이 존재할 수 있다. 왼쪽 가운데의 견해가 사실이 되고 오른쪽 주관과 객관의 너비가 바뀐 형태이다.
이러 혼동은 단어의 정의부터 시작된다. 주관의 객관화를 위해 필요한 게 근거이지만, 애초에 주관에는 이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원인과 이유는 상위문장의 속성만으로 정의되지만, 근거는 사실과 견해라는 상위문장과 하위문장의 관계에서 정의되기 때문에 역할 중복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제목 | 저자 | 출판사 | 판 | 출간 | 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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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 | 심원 | 은행나무 | 1 | 2019. 03. | 2019. 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