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E (월-E)
Created date: Sun, 12 Jan 2020 22:11 KST
Publish date: Sun, 12 Jan 2020 22:11 KST
Last updated: Sun, 19 Jan 2020 12:24 KST
크레딧마저 재밌다
친구가 추천해서 본 영화다.
재밌다. 이게 가장 큰 것 같다. 노력하면 사랑을 이룰 것이다? 환경을 보호하자? 아니면 <멋진 신세계>나 <이퀼리브리엄>과 같이 과도한 과학 발전이 불러온 비극? 조금씩 섞여있는 듯해서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재미있다.
무엇보다 캐릭터 감정 표현이나 행동이 아주 귀엽다. 로봇 컨셉이라서 특정한 대사는 거의 없지만 놀람, 기쁨 등 감정을 담은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Foreign contaminant"를 외치며 강박적으로 청소를 하는 Mo. EVE가 처음 지구에 왔을 때 무서운 속도로 뾱뾱이를 갖고 노는 것. WALL-E가 통과해서 Axiom의 입구가 닫히자 외관을 청소하던 로봇이 필사적으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장면. 주먹 좀 쓰던 불량로봇이 “Stop"을 외치던 전경 로봇을 제압하는 장면. EVE가 WALL-E를 능숙하게 고치는 장면. 영화 내용을 담고있는 듯한 크레딧. 모두 귀엽고 재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사랑에서도.
WALL-E가 EVE를 보자마자 반한 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자. WALL-E는 로맨스 비디오를 오래오래 보며 외로움을 키운 솔로 전사다. EVE와 WALL-E가 너무 달라서 WALL-E가 EVE를 보고 암/수 구분도 못할 것 같았는데, 같은 로봇끼리는 뭔가 통하나보지?
아무튼 식물을 찾고 절전모드로 돌입한 EVE를 WALL-E가 극진히 모셨다. EVE는 상부 명령에 완전 복종하는 여군 느낌인데, 절전모드 동안 기록된 WALL-E의 헌신을 직접 보고는 명령따위 집어치우고 WALL-E를 먼저 챙길 줄 아는 로맨틱 걸 로 거듭났다.
뭐든지 잘하는 EVE는 완전 고장난 WALL-E를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완벽하게 고쳐냈고 재부팅 동안 기억이 날아간 줄 알았던 WALL-E는 재부팅 후 진행되는 자가점검 루틴을 마친 후에 바로 기억을 되찾아 해피앤딩을 만들었다. 역시 랙 걸리면 일단 조금 기다려봐야 하는 것이다.
왜 Axiom이고 왜 WALL-E일까?
Axiom은 수학에서 증명할 필요도 없다고 전제하는 “공리” 혹은 사회에서 옳다고 인정되는 “정의” 등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BnL은 “지구 청소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사람을 Axiom에 태워 우주로 일단 피신시켜 놓고 지구를 깨끗이 청소한 후 다시 지구로 복귀시키는 프로젝트였다. Axiom 안에서는 필요한 게 다 주어져서 심지어 움직일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상적인(?) 환경에 놀랍도록 헌신적으로 순응한다(나같으면 답답해서 못 앉아있었을텐데). 이런 좋은 환경이기 떄문에 Axiom이라 했을까? 혹은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비행체이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성공, 즉 깨끗한 지구를 바란 것일까.
BnL의 프로젝트에서 지구를 청소하는 데 사용한 로봇이 WALL-E인 듯하다(WALL-R 등 여러 버전이 있는 듯하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과물의 이름을 대충짓지 않는다. WALL-E도 그런 경우라 생각하고, “worry"와 연결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더러워진 지구를 걱정하여 만든 청소 로봇이라고 생각하기 딱 좋다. 게다가 WALL-E가 가져온 식물을 보고 선장은 “우리가 지구로 가서 보호해줘야 해"라는 식의 말을 한다. 이런 걸로 보면 어쨋든 이 영화는 환경을 보호하자 는 메시지를 담고 있던 것이 아닐까.
*다른 생각
영화 추천해준 친구는 나와는 달리 로맨틱한 해석을 내놓았다. WALL-E에서 E는 EVE를 뜻하고, WALL-E는 EVE를 보호해주는 벽이라는 것이다. 굳.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들 중 선구자라는 선장마저도 지구를 하룻밤 벼락치기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피자 나무 로 대변된다. 지구는 주기적으로 먼지폭풍이 불고, WALL-E에 밟혀도 끄떡 없는 바퀴벌레정도는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극한의 환경이 돼 있었다. 그들이 심은 식물은 기적적으로 여러 개체가 살아남은 편이었지만, 나무가 아닌 초본 인데다가 그들 식량으로는 절대로 부족한 양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시 그들의 진리(Axiom)로 돌아갔을 것 같다. 그리고 더 열심히 순응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