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Created date: Tue, 04 Jul 2017 01:53 KST
Publish date: Wed, 01 Jan 2020 13:53 KST
상남자 - 샌님 사이 어딘가를 추구하다.
<책은 도끼다>를 통해 읽게 된 두 번째 책이다. 군 복무 때 도서관에서 봐둔 책이지만 우선순위가 밀려 지금까지 읽지 못 했던 책이기도 하다.
여느 책처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이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팔리카리(담대한 남자, 용감하고 잘생긴 청년, 영웅)의 매력을 가진 조르바라는 인물을 소개하려는 작품이고, 이를 위해 스토리를 마련한 듯한 작품이다.
…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
(p. 397)
매 순간에 온전히 열의를 다 할 수 있는 것이 조르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인 두목은 정반대의 성격인 샌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실제로 작가가 조르바를 만나 느낀 부러움과 깨달음(책이 아닌 실제 경험을 통한 배움), 조르바에 대한 호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이 작품에는 카잔차키스 본인의 경험, 사상이 많이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례로, 뒤의 옮긴이의 말을 보면 카잔차키스는 고향 크레타가 터키의 지배 아래 고통받는 것을 보고 조국 해방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러한 지배구조를 없애는 투쟁을 계획한다. 조르바 역시 과거 군인 시절에 조국 그리스를 위해 적국을 대상으로 살인과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리아 마을에서 자신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보고 애국의 명목으로 저지른 자신의 악행을 돌아보고 뉘우친다. 그리고는 조국만을 위하지 않는, 범국가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pp. 329 ~ 334)
또한 종교에 대해 회의적, 풍자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카잔차키스가 태어났을 때 늙은 산파가 카잔차키스는 주교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이를 계기로 카잔차키스는 미래의 주교라는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고 있었다.
… 내게 삶은 아직도 아름답다,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아직도 아름답다 …
(p. 460 - 옮긴이의 말 중)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난 성자 <동굴의 마카리오스>가 얻은 자아와 삶을 부정하는 깨달음에 수긍하지 못 했다. 또한, 고행이 아니라 여자와의 동침으로 얻은 쾌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는 파계승의 깨달음에도 수긍하지 못 한다.
카잔차키스에게는 극히 다른 두 깨달음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 누가 이 여자를 데려갔을까요?
행실이 참한 여자라면 사람들이 <하느님이 데려가셨다>라고 할 거고, 행실이 걸레 같은 여자라면 사람들이 <악마가 데려갔다>고 할 겁니다.
… 하느님이나 악마는 하나고, 똑같은 거에요!
(p. 345)
조르바는 악마와 하느님을 모두 사람의 인식이 만들어낸 관념이라는 동의어처럼 대한다. 카잔차키스가 얻은 종교적 깨달음이 이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르바를 통해 보았을 때 기존의 속물적인 (화재 후 복구를 위해 한몫 잡으려는 수도원), 사람의 목적을 위해 ‘성스러움’을 빌려주는 종교는 그 깨달음에 없는 듯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시적인 장면묘사와 의식의 흐름, 그리고 이를 통해 문단이 자연스레 전개되는 것이다.
…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
(p. 1)
위처럼 바깥 날씨를 묘사하며 자연스레 카페 안으로 장면을 이동시킨 것도 한 예가 된다. 그리고 두목이 자주 바닷가나 바위에 앉아 사색을 즐기는데 그 때도 종종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스토리가 아닌 인물이 중심이라 여겨진 작품이라 그런지 흡인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르바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알게 된 점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제목 | 저자 | 출판사 | 판 | 출간 | 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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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열린책들 | 1 | 2009. 12. | 2017. 07.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