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Created date: Tue, 28 Mar 2017 00:38 KST
Publish date: Wed, 01 Jan 2020 13:52 KST
소통하는 사랑
<책은 도끼다>를 읽은 후 서점에서 산 세 권의 책 중 첫 번째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몇 권 소개했는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함께 사랑을 해부해 보여주는 시리즈라고 한다. 한 권은 남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내가 읽은 <우리는 사랑일까>는 여자의 입장을 보여준다.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같은 커플의 스토리를 화자를 달리해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 두 책은 서로 다른 커플에서 남, 여의 입장을 보여준다.
“연애의 시나리오에서 필요한 장치는 모두 갖추어졌다.” (p. 79)
“다른 사람이 가치를 알아주고 탐낸다는 점이 그녀의 욕망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p. 93)
앨리스는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평범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드라마 같은 그럴듯한 계기로 시작하여 모두가 탐낼만한 남자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롤빵을 잘 굽는 빵집 점원의 용기는 이 조건을 갖추지 못 한 듯하다.
“신성한 거리감” (p. 186)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p. 190)
앨리스는 헌신적으로 에릭을 사랑했다. 에릭은 앨리스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사랑의 구덩이에 깊이 빠져버린 앨리스에게는 무심한 에릭의 모습에서도 눈 부신 빛이 보인다.
“사랑의 영속성 시나리오는 현수교에 비유할 수도 있다. 다릿기둥은 사랑의 확인을 상징하고, 냉담한 기간은 기둥 사이에 몇 미터씩 늘어진 케이블이다.” (p. 162)
“왜 실제 여행 경험은 그토록 기대와 다른지…….” (p. 283)
앨리스와 에릭의 사랑은 균형이 맞지 않았다. 앨리스는 에릭과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에릭이 가지고 있는 현수교의 도면은 앨리스의 것과 크게 달랐다. 에릭은 꿈 같은 여행지마냥 앨리스의 상상 속에서 한껏 부풀려 있었다. 앨리스는 그런 상상에 사로잡혀 에릭을 혹은 그 허상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허상은 현실 속에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p. 312)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p. 317)
에릭과 앨리스의 심리적인 소통은 차갑게 얼어갔다. 앨리스는 진지하게 대화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에릭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앨리스는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게 자연스레 이끌어주는 필립을 알게 된다. 필립은 첫 만남부터 앨리스를 폭넓게 이해했고, 앨리스는 에릭의 사려가 닿지 않는 지역까지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p. 378)
“에릭은 그를 둘러싼 희망 사항들이 투사하는 신기루였다.” (p. 384)
앨리스가 상상하던 여행지는 에릭에게 덧씌울 수 없었다. 잠시간 앨리스가 원하던 방향에 있는 장소를 골라 떠났지만, 실제 여행지는 그 장소에 없었다. 앨리스는 실망했지만 이내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그 남자는 무방비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의 방식이 두려웠다.” (p. 194)
에릭의 입장은 어땠을까. 앨리스의 사랑이 부담스러워서 밀어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에릭은 앨리스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어렵거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랑에 부담을 느끼면 보답하기보다는 밀어낼 수밖에 없으니까.
앨리스는 종교인이 신을 사랑하듯 헌신적인 사랑을 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돈, 직업, 매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런 것을 모두 제외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랐다 또한 서로 부단히 소통하여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오래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나 역시 서로의 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랑을 원한다. 나에게 헌신적인, 혹은 내가 상대에게 헌신적인 것의 정도는 바라는 점이 아니다. 다만 내가 실제로 어떻게 그 사람을 대하게 될지 가늠이 안 간다. 나에게는 앨리스가 한 것처럼 상대방의 사랑을,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있다. 반면 에릭처럼 퉁명스런 태도로 앨리스만큼 노력하지는 않으려는 모습 역시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과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해야겠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필립처럼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같이 있으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운 사람. 나도 상대방도 서로를 이렇게 여기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제목 | 저자 | 출판사 | 판 | 출간 | 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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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 은행나무 | 1 | 2005. 11. | 2017. 03. 28. |